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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시인 권순진의 시 산책

등록일 2019년04월23일 10시16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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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날개다/ 문인수

 

뇌성마비 중증 지체 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 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 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 시집『배꼽』(창작과비평사, 2008)
.............................................................

2010년 8월 30대 초반의 한 지적장애 여성은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한 남성과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다른 한 손이 웃옷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 손은 바지 속까지 넘봤다. 그녀는 일주일 후 이 사실을 교회에 알렸고, 남성은 성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여성의 사회성 지수가 8세 수준인 점은 인정되지만 사건 당시 다리를 오므리는 정도의 소극적인 저항을 했다며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여성이 반항을 할 수 있었음에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판결은 대법원에 가서야 "피해자가 정신적 장애인이란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됐다.

2013년 한 3급 지적장애인이 부산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하려다 포기했다. 시의회 방청안내문에 ‘정신에 이상 있는 사람’은 방청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흉기 등 위험한 물품을 갖고 있는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 등과 함께 ‘정신이상자’의 방청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의회 방청뿐 아니라 박물관과 도서관, 복지관 등 상당수 공공시설에는 지적장애인의 출입을 조례로 막고 있다. 그들을 ‘정신이상자’로 간주한 탓이다.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한 데카르트 이후의 시대부터 정신이상자와 정상인의 차별과 격리가 시작되었다. 그 불합리성을 현대에 와서야 깨닫기 시작했고,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도 십년이 넘었건만 각 지자체의 관련법규에는 여전히 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토록 세상의 모서리에서 안간 힘으로 살고 있으니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면 어느 정도 상태일까. 한마디로 혼자 휠체어에서 화장실 양변기로 옮겨갈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비장애인에게는 아주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들에겐 난이도 높은 묘기에 가깝다. 일단 1∼2초 정도 선 뒤, 제자리에서 무려 180도를 돈 다음 위치를 잘 맞춰 엉덩이를 변기에 얹어야 한다. 기마 자세까지 취해야 하는 대변 뒤처리는 말할 나위 없다. 이 지경이니 나돌아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집에 혼자 있다보면 여러 이유로 사고사의 위험이 매우 높고 해마다 이 같은 죽음은 이어졌다. 보호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안에 불이 나더라도 속수무책 꼼짝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시인이 키보드 상단의 특수기호를 아무렇게나 두드려 ‘번역’한 ‘#@%, 0%.$&%ㅒ#@!$#*?(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에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쩌면 그 눈물은 내가 ‘정상’임을 안도하는 감읍의 눈물과 은밀하게 뒤섞인 알량한 액체였을지 모를 일이다. 저 알지 못하는 기호 음절 사이에는 숱한 주름과 너울, 경련과 울부짖음, 서러움과 노여움, ‘날개’짓도 박혀 있을 것이다.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저릿하고 먹먹해져 오래 하늘만 쳐다보았다. 죽음이,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만든 그 날개가 진짜로 부러울 수 있다니 말이다. 장애인을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말은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여전히 그 편견의 장벽은 높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장애인을 부러워하는 비장애인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증을 차에 붙이고 다니는가 하면, 과거 ‘가라’로 장애판정을 받아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는 얍삽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아주 오래 전 주석에서 한 지인이 장애인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팁’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저 농담으로 흘려들었지만 다른 ‘멀쩡한’ 지인 하나는 그때 가르쳐준 대로 이비인후과에서 청력장애등급을 받아 LPG차도 뽑고 통행료 주차료 등도 20년 넘게 할인받고 있다. 장애인올림픽의 한 시각장애 메달리스트는 실제 측정 시력이 1.5였다고 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할 정신장애자들은 바로 그들이 아닌가. 여기도 쌓인 폐단이 무더기다.

권순진

형남수 기자 hnsoo@daum.net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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