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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과 동반/ 신영복

시인 권순진의 시마을

등록일 2020년01월17일 14시07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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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과 동반/ 신영복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신영복의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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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경제과 출신 27세의 대학 강사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옥살이 후 옥중서신을 모아 처음 출간한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조용하면서도 견고한 정신세계로 다시 우리를 이끈 책이 <처음처럼>이며, 작고 1년 전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펴낸 책이 <담론>이다. 선생 특유의 따뜻한 인생관과 세계관이 묻어나는 글들을 읽다보면 문장의 길이에 상관없이 긴 여운으로 남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읽었던 대목을 다시 들추고 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갖는 이가 나만은 아니리라.

욕파불능欲罷不能이란 말이 있다. 스승인 공자를 닮아가는 일을 멈추고자 하여도 차마 멈출 수 없다고 한 공자의 제자 안연의 말이다. 선생의 제자도 아니고 발 끄트머리도 닮지는 못했지만 선생을 흠모하는 마음만큼은 그와 같다. 선생께서 세상 떠나신 지도 꼭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선생은 가셨어도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 함께 사는 삶, 성찰과 희망에 대한 여러 글들이 가슴 속에서 전율을 일으킬 때가 많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하셨건만 솔직히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선생께서 우리에게 들려준 일관된 주제가 바로 역경을 견디는 자세이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다. 소주 로그로 쓰이고 있는 ‘처음처럼’은 신영복 선생이 즐겨 쓰시던 문구와 글씨다. 당시 신제품 개발을 마치고 제품명을 고민할 즈음에 광고회사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이 문구를 추천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손 대표가 민주당 홍보위원장을 맡으며 새 당명 ‘더불어민주당’까지 이어진다. 다 알다시피 이 ‘더불어’도 신영복 선생의 저서 <더불어 숲>에서 따온 것이다.

이 ‘더불어’와 맥이 바로 통하는 글이 ‘절반(折半)과 동반(同伴)’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란 말도 같은 의미라 하겠다. 지난 '조국'집회 때도 이 말이 떠올랐다. 신영복 글꼴을 두고 ‘어깨동무체’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반(半)은 어떤 것의 절반을 의미하는 동시에 양쪽의 두 대상이 공존하며 함께 나아가는 동반의 의미가 담겨있다. 피아노는 흰색 건반인 온음과 그 온음 사이 검은색 건반인 반음의 조화와 화음으로 연주된다. 아름다운 음악은 그렇게 연주되어야만 가능하다.

‘동반’의 의미에 주목하여, 절반이 승리하면 남은 절반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대립을 두고 처음 한 말씀이었지만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았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남과 북, 여와 야 등 모든 갈등과 대립의 상황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였다. 희망의 반대편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쪽이 이기고 다른 한쪽이 지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조화의 관계임을 말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은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위로이다. 몸이 차가울수록 정신은 더욱 맑아지고 길이 험할수록 함께 걸어갈 길벗이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라 했다. 진정한 연대의 의미도 그것에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선생의 말씀들을 통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칼날 같은 우리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여 동락의 경지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권순진

형남수 기자 hnsoo@daum.net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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