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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신동호

시인 권순진의 시마을

등록일 2020년01월17일 14시01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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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신동호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통합진보당 후배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새누리당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41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2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 김주대 시인의 글을 읽으며 킥킥
그 고운 눈매를 떠올리다 보면 진보, 보수 잘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그 일도양단이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주대가 좋아하는 큰 엉덩이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을까? 싶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나는 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술 먹자는 전화가 온다.
열 중 아홉은 진보적인 친구들이고 하나는 그냥 친구다.
보수적인 친구가 나에겐 없구나, 생각한다.

오후 여덟 시 나는 대부분 나쁜 남자다.
가끔은 세상을 다 바꿔놓을 듯 떠든다.
후배들은 들은 얘길 또 들으면서도 마냥 웃어준다.
집에 갈 시간을 자주 잊는다.

오후 열한 시 무렵이 되면 나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어느새 민주주의와 역사적 책무를 잊는다.
번번이 실패하지만 돈을 벌고 싶고, 일탈을 꿈꾼다.

자정이 다가오자 세상은 고요하다.
개구리는 진보적으로 울어대고 뻐꾸기는 보수적으로 우짖는다.
뭐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사상보다 삶이 먼저라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진보적일지 몰라, 하면서
대충 잔다.

-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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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존 보수 정당에 대한 심판 여론이 확산되자 동시에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 논의도 활발해졌다. 진보를 좌파로, 보수를 우파로 규정짓기도 하는데, 프랑스혁명 때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왼쪽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화파가, 오른쪽엔 예전 왕정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려는 귀족 중심의 왕당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되었다. 이후 국민공회에서도 왼쪽에 노동자, 농민, 빈민을 대변하는 자코뱅파가 앉고, 오른쪽에 상공업자와 부자들을 대변하는 지롱드파가 앉았다.

즉, 보수는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기존의 가치를 지키면서 사회질서를 중시한다. 역사적 정통성에 기반을 두고 성장 발전하는, 우리의 과거사에서 산업화 세력을 일컫는다. 반면 진보는 소외계층을 대변하며 분배와 노동권을 중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변화를 외치며 발전을 꽤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민주화 세력을 의미한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면서도 그들은 다른 의견이다. 보수는 대체로 시장경제 개입을 반대하지만, 진보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중산층이 무너진다며 얼마간 시장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시장의 원리에 맡기자는 것이다. 개인 각자가 자유롭게 부를 얻고자 열심히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평등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욕구를 자극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가도 함께 부유해진다는 논리로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원칙적인 생각이라지만 시장경제에 마냥 맡겨둬 버리면 승자독식의 우려가 있고 실제 우리사회 불평등 구조의 대부분은 그에 기인한 결과이다. ‘강남’사람들이 두터운 보수지지층을 형성하는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도 대비되는 인물들이 있다. 포은 정몽주는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인 반면에, 심상정 대표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은 삼봉 정도전은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치면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이었다. 전자는 나라가 우선이고 후자는 백성이 먼저다. 문 대통령의 과거 선거캠페인이 "사람이 먼저다"였다. 하지만 이제 보수와 진보를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결국 좋은 세상 만들어서 다 함께 잘 살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 자체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공존할 수밖에 없다. 시에서처럼 어느 순간엔 진보적이었다가 또 어느 땐 보수적이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오락가락이다. 웬만큼 진보적이고 웬만큼 보수적이지만, 진보적 가치를 배제하는 보수나, 보수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진보는 곤란하다. 개혁하지 않는 보수도 의미가 없다. 진보는 빨갱이라는 낡은 등식도 폐기되어야한다. 남북 화해, 복지 확대, 민주화 등의 기치가 우리 삶을 핍박할 리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가치들을 조화롭게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썩어빠진 보수 말고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보완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국가는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과 존엄도 실현된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위한 4가지 조건으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을 꼽은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진보 개념도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갈 때,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로 보았다. 진중권 씨는 그 연대를 향해 “집단 속 승냥이, 뇌 없는 좀비”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권순진

형남수 기자 hnsoo@daum.net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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