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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정호승

시인 권순진의 시마을

등록일 2019년08월09일 09시51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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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 시집『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
....................................................

정호승 시인은 외부 요청으로 강연을 자주 다니는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산산조각’은 시인이 50세 무렵에 쓴 작품으로 강연 시 단골로 인용 소개하는 시 가운데 하나다. 가장 아끼며 늘 가슴 속에 담고 다니는 시라고 한다. 지금은 네팔 남동부에 위치해 있는 룸비니동산은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이다. 시인은 그곳을 여행하며 기념으로 부처님 조각상을 하나 사왔다. 그런데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트리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서랍에 넣어둔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이려할 때 불쑥 부처님 말씀이 생각났고, 그 지점에서 이 시가 태어났던 것이다.

법정스님은 “종이 깨어져서 종소리가 깨어져도 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깨진 종일지라도 종소리를 울리는 한 종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못나도 못난 그대로 나 자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희망과 꿈을 종에 비유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나 좌절로 그 종은 수시로 깨어졌고 깨지고 있고 장차에도 깨어질 것이다. 종이 박살이 날 때마다 끝장이라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다. 그런데 금이 가고 깨어진 종을 종매로 치면 깨진 종소리가 나듯이 완전히 깨진 종의 파편을 치면 종의 형체는 산산조각 났을망정 그 조각조각에서 작지만 나름의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

깨져 산산조각난 종일지라도 종이 지닌 본래의 속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꿈이 산산조각 나고 삶 자체가 파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각 난 절망의 파편을 꿰맞추어 다시 꿈을 복원시킬 수도 있겠고, 조각난 꿈의 파편을 수습하여 그 자체의 삶을 부여안기도 한다.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어도 좋을 일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말씀을 평생 가슴에 품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보며 위로와 용기의 거울로 삼았다고 한다.

삶에서 불행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산산조각 난 절망적 상황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건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나를 이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이 시는 절망의 늪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가게 하는 주술 같은 리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되는 언술이나 솔직히 얼른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위기의 순간, 개박살이 나서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누군가에게 한 편의 시가 삶의 지침이 되고 위안이 되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준다면 누구에겐들 좋은 시라 아니할 수 있으랴.

 

형남수 기자 hnsoo@daum.net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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